[서울대학사] #2. 첫번째 모의고사

3월이 되었다.

대학생들에게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첫번째 모의고사가 기다리고 있는 달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난 모의고사 보는 날을 벼르며 칼을 갈고 있었다.
한 달여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증명해보이고 싶었으니까.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들때까지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책만 보며 지낸 시간들, 그 시간들을 점수로 보상받고 싶었다고나 할까.
드디어 모의고사 전 날이 되었고 난 다음날이 수능날이라도 되는양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는 바로 기숙사 도서관으로 가서 이제까지 배운 내용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꼼꼼하게 훑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해서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 지나야, 지나야 잠깐 나와봐.
- 무슨 일이야?
- 이 청바지 니꺼 맞지?

효민이가 내 것으로 보이는 바지를 눈 앞에 들이대며 물었다.

- 어, 맞는거 같은데... 근데 바지가 왜?
- 여기 봐봐. 완전 물들었어. 혜미 청바지가 진청인데 세상에 그거랑 같이 돌렸대.
  미친거 아니니?

자세히 보니 스카이블루진인 내 바지가 푸릇푸릇하게 물들어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 미쳤다고 할거까지야 뭐 있나 생각하고 있는데 1층에서 혜미가 서럽게 울면서 올라왔다.

- 지나야, 내 바지때문에.. 엉엉.. 니 바지가 엉망이 돼서 정말 미안하다.
- ... 어? 아니 뭐...

혜미는 당황스러워 하는 날 스쳐지나 침실로 다급하게 올라갔고 뒤이어 사감선생님이 올라왔다.

- 혜미가 물 빠지는 청바지를 세탁실에 그냥 내놨지 뭐니? 아휴...
  이거는 락스물에 담가놓으면 빠질거야. 지나 니가 이해 좀 하렴.

사감선생님은 억지스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주고는 다시 내려갔다.

- 와.. 완전 어이없지 않냐? 세탁물을 지네가 분리해서 빨아야되는거 아냐?
  그런거 해달라고 이 비싼돈 쳐들여가며 기숙사 들어온건데.. 와.. 진짜 사감 짜증 대박.

- 내말이. 아까 혜미한테 몰아붙일때 진짜 정내미가 뚝 떨어지더라니까.

나는 이제야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바지 주인인 나도 가만히 있는데 뭐가 저렇게들 열이 받았을까.
그리고 내 바지가 물든걸 발견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문득 내 세탁물을 누가 건드린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난 지금 이런 일 때문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혜미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 어쩔 수 없지 뭐. 난 이만 들어간다.

사감선생님 뒷담화에 발동이 걸린 아이들을 뒤로한 채 난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 그래, 열심히 떠들어라.
  그 시간에 난 니들을 앞질러 갈테니까.
   
내가 이렇게 재수없는 생각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by 정미나 2012.06.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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