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었다.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포근해져가고 있었고
스무살이던 우리들의 마음에는 봄바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1층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데 효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왔다.
               
- 내일 애들이랑 동대문에 옷 사러 갈건데, 같이 안갈래?
               

동대문은 예전에 딱 한번 가본적이 있었다.
불현듯 두타와 밀리오레를 구경하며 입이 딱 벌어졌던 기억이 났다.
               
- 누구 누구 가는데?
- 일단 남지윤이랑 백지윤 간다그랬고 인영이도 갈걸 아마?

 

가고 싶었다. 그동안 참고 있었지만 난 옷 구경 하는걸 무척 좋아했다.

 

- 그래! 가자가자~

 

난 들뜬 마음에 침실로 돌아와 그동안 모아두었던 용돈을 꺼냈다.
사실 모아둔것도 아니었다. 딱히 쓸 일이 없어 쌓인 것일뿐.
대충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고 있는데 인영이가 다가왔다.

 

- 지나야, 혹시 시간 괜찮아?
- 응? 지금? 왜?
- 어, 나 상담 쫌 해도.

 

인영이는 부산에서 올라온 내 맞은편 침대 주인이었다.
나와 인영이는 아침 저녁으로 마주볼 일이 많긴 했지만 딱히 그렇게 친하다고 할 수는 없는 사이였으므로

상담을 해달라는 얘기가 좀 뜻밖이긴 했으나 많은 애들 중에 굳이 나에게 얘기를 들어달라는게 살짝 고맙기도 했다.

인영이는 나를 발코니로 데리고 나갔고 우린 나란히 밖을 보고 앉았다.
그런데 평소 매우 유쾌한 성격이었던 인영이가 잠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 음.. 무슨일 있어?

 

난 인영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 사실은.. 나 따돌림 당하는 거 같다.
- 엥? 니가? 너 친한애들 많잖아.
- 지지난주엔가 정은이랑 쫌 싸웠거든. 근데 그때 이후로 남지랑 백지가 나랑 말을 안한다.

(남지랑 백지는 이름이 똑같이 '지윤'인 애들을 구분하기 위해 성을 따 붙여진 별명이었다.)

아무래도 정은이가 내 욕하고 다니는 거 같다.

- 설마.. 효민이는 내일 너랑 남지랑 백지랑 같이 동대문 간다고 그러던데?
- 그게 처음에 남지랑 백지가 간다카길래 효민이랑 내랑 듣고 있다가 같이 가자 그랬거든,
근데 갑자기 눈치를 막 보는기라. 아마 저것들 안 간다고 할 거 같다.
아.. 진짜 괴롭다. 말 걸어도 쌩까고 맨날 째리보고..
한 한달만 더 지내보다가 나아지는 거 없으면 기냥 하숙집으로 나갈까 생각중이다.
- 헐. 그 정도야? 정은이랑 화해하려고는 해봤어?
- 할라고 했지. 미안하다고 기분 풀자고 했는데 싫단다.
나한테 말도 안하고 애들한테 뭐라 그랬는지 애들이 점심시간에 내랑 밥도 같이 안 먹는다.
- 그랬구나. 전혀 몰랐어.

 

늘 웃고만 다니던 인영이에게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할 수 없다기 보다는 별로 할 마음이 없었다.

인영이가 외롭지 않도록 같이 밥을 먹거나 얘기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내가 나서서 그들 무리와 인영이를 화해시켜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은 한가하게 친구나 사귀자고 와 있는 곳이 아니라 

지금보다 좀더 나은 미래로 갈아타기 위한 일종의 환승처였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결국 인영이는 2주쯤 더 있다가 기숙사를 나갔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었던 우리들만의 사회에도 엄연히 정치는 존재했고

소위 말하는 '누구누구 라인' 이라는 말을 우스겟소리로 하기도 했으며

거기서 '누구누구', 즉 리더격에 해당되는 아이는 집이 부자여서 용돈이 흘러 넘치거나

공부를 잘해 스카이 대학을 갈거라 예상되던 애들이었다는 것을 회상해보면

애들의 세상이나 어른들의 세상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씁쓸해진다.

 

하지만 우리에겐 꿈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역전의 기회가 있으며

지금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닐거라는 희망이 있기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한다.

 

 

『 성공은 마음의 평화이며,

    마음의 평화는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아는 데서 느껴지는 뿌듯함이다.

    - 존 우든 』

by 정미나 2012.10.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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