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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그 옛날 날 설레게했던 동네가 고단한 일터로 변하기도 하고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 같았던 누군가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흘러간다.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긴 했지만 내 인생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 의도된 바였다. 스스로를 낯선 곳에 떨구어 놓고 내가 아닌 남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나름 중독성이 있다.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
『 언제부터인가 세상일이 다 그런 식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두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요셉은 둘 중 어느 자리에도 가지 않음으로써 무조건 오답을 택하게 돼 있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저항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게다가 그는 꼭 참석하기를 바라는 작가에게는 편집자가 하루 전쯤 확인전화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전화를 받은 지 꽤 오래된 요셉으로서는 그들의 관리대상 리스트 따위에는 끼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얼굴을 내비치면 안되었다. 어쨌든 요셉은 이제부터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야 했다. 요셉의 경우 아침형 인간이란 아침부터 비관적인 인간을 뜻하는 것이었다.』 시종일관 시니컬한 퇴물작가 요셉의 시선이 유난히 재미있었던 책. 읽는 내내 작가의 포..
세상에는 옳고 그른 것 따위가 애초부터 중요한 일이 아닌지도 몰라.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 예전부터 은희경의 시니컬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좋았다. 소설이지만 결코 술술~ 읽어나갈 수만은 없는..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책.
저는 슬픔을 잘 견디지 못해요. 사람들은 모두 다 슬픔을 잘 참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처럼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죠? 슬퍼도 일을 하고 먹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러다보면 슬픔이 사라지기도 한다면서요? 젬마 수녀님은 기도를 하면 슬픔이 사라진다고 말하곤 했지요. 하지만 저는 잘 안 됐어요. 당신은 어떻게 해요? 당신도 슬플 때는 울겠지요? 모르긴 해도, 슬플 때는 시간을 정해놓고 실컷 슬퍼하는 게 어때요. 무엇 때문에 그처럼 슬퍼했는지 그런 자신이 이해가 안 돼서 어리둥절해질 때까지 말예요. 어떻게요? 그러니까, 물병 속의 물처럼 계속 마셔서 없애는 거예요.
사랑을 믿지 않을 때는 사랑이 가능해요. 왜냐하면 그 단계에서는 1킬로그램 정도의 사랑을 원하니까요. 그러나 1킬로그램을 얻은 다음의 갈망은 더욱 강렬해져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하나이며 영원한 사랑까지를 원하게 마련이죠. 그때부터 사랑이 불가능해지는 것이구요. 사랑이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랑이 사라져요. 진정 사랑을 원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불가능해지듯이요. 저는 불가능한 줄 알지만 끊임없이 열망하고 그리고 예정된 파탄에 이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