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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파네마 소년::The Boy From Ipanema

정미나 2011. 11. 16. 01:24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해파리따위가 그런 말을 하다니.. 하긴, 해파리 중에도 천재가 있을 수 있는 법이니..
그 천재 유령해파리는 나를 두고 어디론가 둥둥둥 떠밀려간다. 둥.둥.둥...






나는 그 겨울, 내가 세상의 끝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령해파리는 내게 말했다. 여기는 너무 추우니 따뜻한 곳으로 가자고.
그리고 더이상 나의 위태위태한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고도 했다.




난 여기가 좋다고 했고 유령해파리는 나를 두고 그렇게 둥둥 떠나갔다. 둥둥둥...




나는 우연히 유령해파리를 다시 만났다.





난 유령해파리에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유령해파리는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은데 그게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는 그저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하찮은 유령 해파리일 뿐이라고.. 반찬으로도 못쓴다고 슬프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해파리 냉채를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해파리가 너무 슬프게 보여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겨자가 많이 들어간 해파리 냉채를 무척 좋아한다고.
그대신 난 유령 해파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어디론가 떠밀려가는 것 같은데 그게 소름끼치게 싫다고.
그리고 왜 내 몸속에 있는 기억이 점점 투명하게 사라지는지, 왜 그녀를 기억할 수 없는지 괴롭다고 했다.
나도 너처럼 기억의 플랑크톤을 먹으면서 어디론가 끔찍한 곳으로 떠밀려 가는 해파리 같다고 했다.




해파리 냉채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별소릴 다한다고 유령해파리는 말했다.
파도에 떠밀려 다니며 천덕꾸러기 취급이나 받는 하찮은 해파리에게 왜 그런 소릴 하냐고 했다.


 

 

 

유령해파리는 담배를 피우면서 어디론가 둥둥둥 떠밀려갔다.
새로 나온 레이몬드라는 담배를 한 번 피워보라는 말을 남기고 담배 연기처럼 둥둥둥 떠나갔다.


 



『 빌어먹을 해파리자식..』






나는 어딜가는거냐고 또다시 유령해파리에게 물었다.
해파리는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물어보냐고 화를 냈다.




자기는 그저 파도가 치는대로 떠밀려 갈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기는 이파네마 해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거기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 지금 한참 여름이라고 했다.
자기는 거기서 아름다운 이파네마 소녀들과 수영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거기 여자들은 대부분 티팬티를 입는다고도 했다.


 










 

 

 





 




『 이 바다의 전설..

    아.. 신기한 꿈 꾼다는 거?
   
    너 내가 왜 이렇게 수영 연습을 열심히 하는줄 알아?
   
    아니.
   
    저기 바다 안에는 작은 문이 있대.
    그래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사람의 꿈 속으로 이렇게 헤엄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다른 사람의 꿈으로?
   
    응, 다른 사람의 꿈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거야.
   
    치.. 그래서 그 문을 지금 찾고 있는거야?
    
    응, 수영 연습도 해야하니까.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오거든.
    계속 다른 사람의 꿈속을 헤엄쳐 다녀야 하니까. 해파리처럼 말이야. 』




유령해파리는 도대체 왜 그러고 싶은거냐고 내게 물었다.
난 이 모든게 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그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해파리는 내게 따져 물었다.
모든게 과거로 사라지지만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고 나는 말했다.
해파리는 단박에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둥둥둥 떠나갔다.



 




영리한 해파리가 둥둥둥 떠나갔다.







『 근데.. 니 얼굴이 기억이 안나.

    내 얼굴..?

    응.. 이건 니 얼굴이 아니잖아, 걔 얼굴이잖아.
    니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런가봐.
    걔를 만나고 나서는 더 니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이제 내가.. 완전히 떠날 때가 됐네..』


 



이제 내가 완전히 떠날 때가 됐네.
유령해파리도 그녀와 똑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해파리들의 이별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해파리들의 이별 파티,  
그 웃기는 파티에서 유령해파리는 모든것이 과거로 사라지는 법이니
자기가 사라지는 것도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해파리 냉채를 무지 좋아한다고 했다.


 




유령해파리는 이번 조류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가겠다고 했다.
현해탄..? 그건 새로 나온 구공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해탄을 건너는 것이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 맘대로만 된다면 자기는 이파네마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아름다운 티팬티들을 보러 말이다.


 


 

 



제발 좀 정신 차리라고 유령해파리는 내게 화를 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 못하는 옛여자는 깨끗하게 잊어버리라고 했다.
난 걱정말라고 했다.
그 겨울 여행 말고는 이제 기억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옛여자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 아이의 얼굴로 옛여자를 회상하는 것은
정말 치사한 일이라고 해파리는 말했다.




그 아이를 좋아하면서 도대체 왜 그런 청승을 떠냐고 했다.
그 아이를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나는 대답했다.




시작부터 끝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비겁한 일이라고 유령해파리는 내게 말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울컥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아야했다.
해파리따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니까.




『 걱..정했었어.
    난 너가 진짜 그 문으로 들어가버린 줄 알았거든. 』




『 이젠.. 사라지지마. 』





유령해파리는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눈꼴이 사나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해파리의 사과따윈 필요없다고 했다.
유령해파리는 너같은 찌질이를 두고 가려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오버하지 말자고 했다.




영원한 것은 오직 꿈뿐이라고 해파리는 말했다.
나는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4대류의 해파리 중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해파리는 유령해파리 너밖에 없을거라고 했다.
해파리는 오버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유령해파리가 현해탄을 무사히 잘 건너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파리는 말했다.
자기는 파도에 떠밀려다니는 하찮은 해파리일 뿐이라고.




나는 언젠가 유령해파리가 이파네마에 가서 티팬티 아가씨들을 만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쥐포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아, 아니 쥐치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유령해파리는 알겠다고 하고는 미스코리아처럼 손을 흔들면서 어디론가 둥둥둥 떠밀려갔다.
나를 두고 어디론가 둥.둥.둥...
내 심장박동 같이 둥.둥.둥...




잘가.. 해파리..
안녕.




 


 



『 내가 이 해변에서 처음으로 잠이 든 날,
    그래서 소년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그 날,
    소년은.. 이 해변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소년이 물에 빠진 것이라고 했고
    시체가 곧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친구도 내 말을 믿으려하지 않았다.
    내가 소년의 꿈을 꾼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 뒤로도 소년은 이 해변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들의 시간들이 그렇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꿈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늘 그 아이의 꿈을 꾸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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